닫기

[칼럼] 김정은 정권의 법제 속에 투영된 북한 사회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atoo4u.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203010001599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2. 03. 16:57

clip20241203152335
박정원 (통일과 북한법학회 회장, 국민대 법대 교수)
북한 김정은 정권은 남한에 대해 적대적 두 개 국가론을 제기하고 하나의 민족에 기초하여 강조했던 기존 통일원칙을 지우고 있다. 대남 강경책의 이면에는 연방제 통일의 무용론에 입각한 수세적 현실 인식과 핵무력정책 실현을 위한 명분 축적이란 배경이 있다. 남북관계가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주요 원인에 해당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8·15통일독트린'을 제시하였다. 요컨대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통일을 향한 열망을 촉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의 부정적 태도에 의해 당장 수용되기 어려우나 이 독트린의 이해와 실현은 김정은정권의 실상과 북한 사회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정은정권 출범 13년을 지나고 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승계한 김정은 정권은 여전히 수령유일지배체제를 고수한다. 선대 정권에 비해 법제정비 동향은 뚜렷하게 대비된다. 김정은 정권 출범 후 2024년 2월까지 481건의 법이 정비되었으며, 지속적으로 제정 또는 개정되고 있다. 사회주의법제사업의 강화와 사회주의법치국가론을 강조한 김정일 정권에 비해 크게 확대되어 북한법령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렇게 정비된 북한법령은 김정은 정권의 정책 및 북한 사회의 변화를 분명하게 반영한다.

먼저 사회주의헌법은 김정은시대에 들어서서 올 해 비공개 개정을 제외하고 6번 개정되었다. 현실과 헌법규범의 차이 개선이라는 규범적 면이 있지만 대체로 김정은 체제를 헌법적으로 제도화하거나 정당성을 강화하는 의미가 크다. 국무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배제를 통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최고통치자의 법적 위상을 제고하였다. 또한 선대 업적을 찬양하는 한편 청산리 방법과 원칙, 대안의 사업체계를 삭제하고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원칙으로 대체한 것은 경제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선대와 차별되는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과시한 것이다. 예고한 적대국가론에 기초한 헌법상 영토조항의 신설도 선대의 통일위업을 뛰어 넘으려는 김정은의 최고권력 입지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북한 당국은 정보화를 과학기술인재의 확보와 경제발전을 위해 강조하고 법령에도 추가 명시하였다. 이런 불가피한 면에서 강조되는 정보화가 정권이반적 행위를 만연하게 하여 체제수호와는 역행하는 상황에 강한 경계를 펴고 있다. 특히 남한으로부터 유입되는 정보와 문화는 폐쇄적인 북한 정권의 결속을 해이하게 하는 요인으로 북한 당국이 철저하게 배척하는 대상이 되었다. 순수한 문회적 교류와 정서에 대해 반사회주의행위로 규정하여 반국가범죄에 준하는 엄중한 처벌을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은 북한의 신세대의 생각과 행위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대표적인 반인권법제로 비판된다. 이와 함께 군중신고법, 정보보안법 등은 북한사회의 감시체제를 강화하는 입법조치에 해당한다. 북한주민의 일상을 옥죄는 사상 통제입법들은 김정은 정권의 일체화와 독재화를 강화하는 입법으로 체제수호의 위기감과 압박감을 드러내고 있다.

셋째로 경제관련 법령 정비는 북한 경제 상황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북한에서 공식화한 종합시장에 의해 형성되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한편 이로부터 발생하는 역효과를 제어하려는 북한 당국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북한은 이미 경제개선조치를 통해 자본주의원리를 수용하고 은행제도의 개선, 재정과 회계부문의 정비를 위해 중앙 및 상업은행법, 금융감독법, 화폐유통법, 재정법 등의 정비는 북한 경제제도의 개선을 담고 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체제이탈 방지를 위해 민생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관련법령의 정비는 이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지만 자세히 보면 주민에 대한 통제체제를 강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제제도 개선이면서도 지도와 통제를 강화하고 처벌을 보다 구체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이라는 명분 뒤에 체제수호 중시라는 이율배반적 모습에서 진정한 경제개선 정책을 찾기 어렵다. 다만, 민법의 경우 기존 271개조문에서 597개조문으로 대폭 증가된 사실과 경제제도 변화와 관련한 다른 경제법제의 개선 동향은 예의주시할 부분이다.
북한은 주체사상(김일성이즘)과 선군사상(김정일이즘)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운다. 북한 세습정권의 속성에 비추어 김정은식의 통치가 확고해지면서 또 하나의 이른바 '김정은이즘'의 출현을 예상해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정식화 내지 정치방식화하는 과정에서 법제를 통한 통치방식을 이끌어내고 있다. 김정은식 사회주의법치국가건설론은 발전하여 인민대중제일주의법건설사상으로 강화되어 법제를 통한 통치를 지배수단화하고 있다. 북한에서 사법 검찰 법무일군대회를 통해 강조되는 인민대중제일주의법건설사상 확립은 김정은 일인지도체제 강화를 위한 통치이념화로 귀결된다는 점을 경계하고 우려한다. 북한이 폐쇄와 통제사회로 빠져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8·15통일독트린'의 명백한 취지와 방향임을 충분히 인식하여야 한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