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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퐁 K리그 우승메달, 국왕 제작 요트...태국 스포츠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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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장원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1. 07. 14:15

태국 국립스포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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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국립스포츠박물관의 1985년 K리그 우승메달. 피아퐁의 기증품이다./사진제공=전형찬
한 나라의 국격을 가늠하는 지표는 여럿이다. 박물관의 개수와 규모, 전문박물관의 다양함도 그 중 하나다.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 내부엔 태국 국립스포츠 박물관이 있다. 태국 스포츠 역사를 총망라한 박물관이다. 한국에서 온 전시물도 있다. 1985년 K리그 우승 메달이다.

태국 선수의 전리품이다. 피야퐁 피우온은 태국 축구의 영웅이다. 태국 국가대표팀 역대 2위 득점기록 보유자이며 38세까지 대표팀 주축으로 활약했다. 그는 동남아 1호 K리그 진출자다. 1984년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현 FC 서울)에 입단, 1986년 시즌까지 활약했다. 1984년 LA 올림픽 1차 예선에서 한국을 상대로 탁월한 경기력을 선보인 것이 스카우트의 배경이다.

1983년 세계청소년대회 4강 멤버를 주축으로 구성한 '평균연령 역대 최연소 한국대표팀'은 피아퐁의 움직임에 연속 돌파와 골을 허용했다. 동료를 활용하는 영리한 플레이와 이타적 마인드는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K리그 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85년 시즌은 피아퐁의 선수생활 절정기다. 득점왕(21경기 12득점), 도움왕 등 2관왕을 차지하며 럭키금성의 첫 K리그 우승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피아퐁은 동물적 득점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축구인들의 표현을 빌면, '골 냄새가 나는 시간과 장소'를 찾아가는 능력이 탁월했다. 슈팅 타임도 반박자가 빨랐다. 체격이 다소 작다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피아퐁은 "계약서에 사인한 후 '고귀한 분'을 만나 '태국의 명예를 높이고 오라'는 특별 격려를 받았다. 그 분과 태국 국민들의 응원을 생각하면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가 경기장 안팎에서 '모범생활 사나이' 그 자체였던 배경이다.

피아퐁이 득점왕, 도움왕에 오르자 태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지금처럼 SNS가 발달했다면 아마 태국 국민 전체가 럭키금성 축구단의 응원단이 되었을 것이다. 럭키 금성의 전지훈련을 겸한 원정경기에 만원 관중이 들어찼고 방콕 최대 백화점인 소보 백화점의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가 럭키금성으로 바뀌었다. GS 가전제품 매장이 따로 들어설 정도였다. 그는 태국의 차범근이자 박지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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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퐁 아우온. 축구선수이면서 공군 장교로 복무했다./ 사진제공=전형찬
당시 피아퐁의 팀메이트 중에 유명인사가 많다. 2002년 히딩크 사단의 코치진 박항서, 정해성, 김현태가 모두 럭키 금성 황소 축구단 출신이다. 피아퐁은 박항서 감독과 동남아에서 여러 번 만나 회포를 풀었다고 들었다. FC서울은 지금도 피아퐁을 팀의 전설로 각별히 챙긴다. 선수들도 선배 대접을 깍듯이 한다. 그가 받은 K리그 우승 메달이 박물관 한편에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다. 벽에 걸린 피아퐁의 현역시절 사진도 반갑다. 스포츠는 이렇게 세월과 국경을 뛰어 넘는다.

나이야나 폰프라답 태국 국립스포츠박물관장은 태국 스포츠 역대 최고의 스타로 피아퐁을 꼽았다. 그는 "피아퐁은 그는 기술적으로 다른 차원의 선수였다"며 "지금 현역들과 비교해도 그의 테크닉이 월등하다. 그를 뛰어넘는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나이야나 관장에 따르면 연간 이곳을 방문객 수는 약 1만명에 이른다. 어린이들도 많이 찾고 선수들의 방문도 잦다. 1984년 LA 올림픽 복싱 은메달리스트인 카오퐁도 최근 다녀갔다. 특히 태국 국왕은 1년에 한 두 차례 꼭 방문한다고 한다. 나이야나 관장은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전시물이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폐하(1927~2016)가 직접 제작한 요트라고 한다. 1967년 SEAP(동남아 시아 경기대회 SEA Game의 전신)게임에 출전, OK급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셨다"고 설명했다.

나이야나 관장은 영국에서 열린 포뮬러 1 레이스 1936~1938년 3연패를 달성한 '비라' 왕자, 나중에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이 되는 플트라트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태국 역사상 첫 메달(동메달)을 획득한 순간 등을 태국 스포츠 역사상 잊지 못할 순간으로 꼽았다. 개인적으로는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솜락 캄싱(복싱)이 따낸 최초의 금메달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축구와 프로복싱, 그리고 무에타이가 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라고 소개했다. 여자 배구는 최근 인기 급상승이고 여자 축구도 언젠가는 올림픽 메달을 땄으면 좋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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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야나 폰프라답 태국 국립스포츠박물관장(왼쪽)과 장원재 선임기자/ 사진제공=전형찬
나이야나 관장은 스포츠 스타들이 더 많은 물품을 이 곳에 기증해 주길 기대했다. 그는 "어린이들이 '이곳에 와보니, 태국에 대한 프라이드를 느꼈다'고 말한다"며 "전시물품이 많아지면 어린이들이 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국립경기장 안에 박물관이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독립건물 신축 계획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태국은 올림픽에서 복싱과 역도에서만 메달을 땄다. 태권도가 정식 종목이 된 이후 우리 메달밭이 하나 더 늘었다"며 "태국에 오면 우리가 얼마나 태권도를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 풍성한 전시물로 인사드리겠다"고 한국 국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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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라 왕자의 마네킹과 포뮬러 1 레이스 우승카 실물./ 사진제공=전형찬
장원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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